20. 기억
살아있다는 것은
때론 기억 한다는 것.
추억은 언제나
그리움에 비례한다.
하늘이
무너져 내릴것만 같은
아픔이 있다해도
그래도 지구는 돈다...
==========================
맨처음 유난히 하얀 피부라 느끼기만했다.
병으로 인한 창백함임을 몰랐던 나의 착각이
너무나 미안하기만 하다.
조금만 뛰어도 숨이 가쁜아이를
그저 여자아이라 그런가보다 했었다.
영원의나라... 그 닉을 보고도 아무 생각을 못했다.
롯데월드도 못가봤다 하면서도
꼭 멀리있는 에버랜드에 가고싶다고 하는 이유를
그땐 몰랐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다.
이따금 타오르는 갈증만 있을 뿐
허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어쩜, 먹는다 해도 그대로 다 쏟아버릴지도 모르겠다...
.
.
.
.
.
.
.
"그럼 골수 기증자는 있는 상황인가요..."
어쩌면 물으나 마나한 질문.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 했던가.
나역시 행여 하는 마음이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고개를 가로젓는 응답 뿐이었다.
"........."
"........."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무슨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연희가 처음 백혈병이란 걸 알았던 건... 고등학교 2학년때였어요."
뜨겁던 커피가 식어갈 무렵, 그녀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언제부턴가 많이 힘들어하고... 코피가 나도 쉽게 멎지가 않아 병원엘 갔었죠.
그때 알았어요. 우리 연희에게 그런 무서운 병이 있었는지...."
만성골수성은 급성과는 달리 병의 진행속도가 느리다.
처음에는 하이드레아를 복용했을테고... 나중엔 글리벡을 투여했겠지.
"학교도 그만두고 그렇게.... 5년동안을 매일 투병을 했어요."
그리고... 행여 나타날지도 모르는 골수기증자만을
매일같이 기다렸을테고...
"매일같이 병원을 다니면서 치료를 받았지만.. 병의 진행을 늦추는 정도였었죠."
"....항암치료는 하지 않았나요?"
"네.... 입원조차 싫어해서 집에서 통원치료만 했었거든요...."
속이 매스꺼워져서 모든 것을 다 토해버리고
너무도 독해 부작용으로 머리카락까지 다 빠져버리는... 최후의 방법.
"그렇게 매일같이 창문밖만 바라보고 살던아이가... 그렇게 집에서 책만보던 아이가....."
"..........."
그녀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돈다.
"어느날 갑자기 생기가 돌더라구요."
바보....
"그렇게 먹기 싫어하던 음식들은 먼저 찾는가 하면... 심지어....."
"......."
"...쑥뜸뜰때도 울지 않고 꼬옥 참더라구요...."
엷게 웃는 미소사이로 눈물이 맺히는 것이 보인다.
"항상 뜸을 뜰때면 아파서 몸부림치던 아이가... 오빠를 알게되면서부터 많이 달라졌어요."
"........"
아.....
"내 방에 들어와 나를 쫓아내고는 컴퓨터를 하면서.... 자긴 꼭 나을꺼라구.
그래서 연애도 하고 시집도 갈꺼라구....."
"........."
"언제나 오빠이야기를 할 땐.... 자기도 모르게 얼굴에 홍조가 돌았었죠..."
코끝이 시큰해져 온다. 젠장..
이를 악물고 울음을 참아본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한동안 진행이 멈췄던 연희의 병이... 심해지기 시작했어요."
....급성기라더군요.... 더이상 약으로는 진행을 늦출수가 없었어요.....
연희는... 항암치료를 받기로 하고... 마지막 소원으로 외출을 하고 싶댔어요..."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오빨... 참 많이 좋아했어요. 바보같이 얼굴도 모르는 사람인데도....."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하늘이 너무도 가혹하기만 하다.
.
.
.
.
.
'그럼 넌 뭐가 싫은데??'
'쑥이요. ㅠㅅㅠ'
'엥....?'
'난 쑥이 정말 싫어요. 세상에서 젤루 싫어..ㅠㅠ'
바보같이...
난 영원이가 그말을 왜 했었는지... 여태 몰랐다.
내품는 담배연기 사이로
눈물도 함께 흩어진다.
========
아침부터 일어나서 옷매무새를 다듬어 본다.
면도를 하고 샤워를 하면서
거울에 이곳저곳을 비춰본다.
밝고 말쑥한 모습으로 비춰지고 싶다.
조금이라도 초췌한 모습은 들키고 싶지않다.
.
.
.
병실문을 들어서기 전에 심호흡을 한다.
"후우...."
이 문을 들어서면 영원이가 있다.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사람이 있다.
꽃다발을 든 내 모습이 많이 어색하지만, 용기를 내본다.
"똑똑...."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서자
침대에 누워있는 영원이가 보이고
그 주변에 영원이의 가족들이 보인다.
"처음 뵙겠습니다. 유현민이라고 합니다..."
"반가와요. 내가 연희 애비되는 사람이에요."
인자해보이는 모습의 가족들.
캐나다에 있다는 큰언니를 제외하고는
모두 연희곁을 지키고 있었다.
따뜻해보이는 사람들..
이런 가족들이라 다행이다, 정말..
=======
"삼춘..... "
고개를 돌려서 침대에 누워있는 영원이를 본다.
순간 눈물이 울컥 쏟아질 것 같다.
.
.
.
.
.
.
"연희가.... 오래 못버틸 것 같아요..."
창밖을 내다보며 영원이의 이야기를 하던 작은언니가
갑자기 힘들게 입을 연다.
"....폐렴이 왔어요. 흑...."
".....!!!!"
백혈병에 걸렸을때 가장 무서운 것이 열이다.
일시적으로 나는 열이 아닌경우에는
몸속 어딘가에 염증이 생겼다는 이야기므로
그것이 곧 합병증으로 이어진다.
"하.... 항생제는요? 항생제로도 나을 순 없는 건가요?"
"흐흑...."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인간의 의술로는 해결하지 못할 선을 넘어간 상태...
"내일... 병원에 와주실 수 있으세요...? 연희가 많이 보고싶어해요...."
영원이는 벌써 하늘나라에 한발을 들여놓은 상태였다.
.
.
.
.
.
"헤.... 이런 모습 보이고 싶진 않았는데...."
아이보리색 모자를 눌러쓴 영원이.
아마 저 모자밑엔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을것이다.
여전히 하얀 피부에 수줍은 미소.
낯선 환자복이 조금은 민망한듯 담요를 가슴까지 끌어올린다.
"괜찮아.....? 아직 많이 아퍼...?"
"응... 많이 좋아졌어요."
영원이의 곁으로 다가서서
조심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금새라도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엄마... 잠깐 할말이 있어요."
어제 보았던 연희의 작은언니라는 그녀.
조금 불편할지도 모르는 나를 배려하듯이
부모님을 모시고 밖으로 나간다.
"삼춘......"
"응..."
"많이 보고싶었어요...ㅎㅎ"
.....나도.
목구멍까지 울음이 솟아 입밖으로 말이 나오질 않는다.
"삼춘이랑 또 에버랜드 가야되는데.... 헤....."
"으응... 또 가면 되지......"
그럴수 없을거란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밖에 위로하지 못하는 내가 싫다.
"에.... 삼춘 울어효?"
"아냐... 울긴 누가...."
바보같이.. 눈물이 멈추지가 않는다.
"우리삼춘은... 참 바보에요. 정말....."
영원이의 손길이 내 얼굴을 어루만진다.
예전에 그랬던 것 처럼.... 내 눈물을 가만히 닦아준다.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조심스레 영원이에게 입을 맞춰줬다.
이마.
콧잔등.
그리고 입술.
너무도 그리워했던 영원이의 모습.
"헤... 우리 삼춘, 이제 보니 선수네. ㅎㅎ"
애써 농담으로 슬픔을 감추려 하지만
나보다 영원이의 가슴이 더 아플 것이란 것이
피부로 느껴져 그것이 더욱 슬프다.
===========
"삼춘!!! 아니아니 그렇게 말구요!!"
"음.... 이렇게 하면 되는거야?"
잠시 그렇게 영원이와 있다가
영원이의 부탁으로 캐비넷 뒷쪽에있는 노트북을 꺼내왔다.
병원에 컴퓨터가 없었기에
지난번에 내내 언니를 졸라서
노트북을 가져오게 한 모양.
그리고 아픈몸을 무릅쓰고 병원에서 힘들게
와우에 접속을 했었을 것이다.
내 생일 축하해 주기 위해...
"와... 이러면 정말로 와우에 접속이 되는거야?"
"그러엄요!! 'ㅁ')/"
무선랜 카드 같은것일까.
조심스럽게 와우를 실행시켜 본다.
"아이디 불러봐."
"for*******"
한자한자 영원이의 아이디를 입력해본다.
"패스워드는?"
"안대욧!! -_-)+"
힘들어서 대신해준다는 말은 들은체만체
자신이 직접 입력해야한다고
노트북을 자신의 다리앞에 놓는다.
그리곤 한자한자 힘겹게 패스워드를 입력을 한다.
로그인을 하자 보이는 회색빛 풍경
가시덤블 북쪽 무덤가에 영혼의 치유사 앞에
영원이의 모습이 보인다.
"헤..... 무덤부활 해야지."
영혼의치유사에게 무덤부활을 시켜놓고
아이언포지로 귀환을 탄다.
그리고 곧바로 로그아웃을 한다.
"삼춘, 아이디 불러봐요."
"응...? 내꺼?"
"네에!! 'ㅁ')/"
"싫은데... -_-"
짐짓 안가르쳐주려고 하자
영원이의 커다란 눈동자에 장난기가 돈다.
"흐음... 진짜 안가르쳐 줄꺼에요?"
"내가 그걸 왜 말해주냐. -_-"
갑자기 심호흡을 하듯이 숨을 크게 들여마시고는
무언가 큰소리로 이야길 하려고 한다.
"언니~~!! 삼춘이 나한테 막 이상한 짓 하려고~~~ 웁웁!!"
"....뭐든지 다할께.... ㅠㅠ"
약간 오버하듯이 영원이의 입을 막고는
설득을 시켜본다.
영원이가 원한다면 와우를 접어도 상관이 없다.
아니, 두번다시 인터넷이며 게임따위 안해도 좋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장난을 치고 싶었다.
"된다.ㅎㅎ"
아까 영원이의 영혼이 서있던 바로 그자리에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나의 흑마도 온통 회색빛으로 서있다.
무덤부활을 하고 귀환을 탄다.
"이렇게 여관에 세워놔야 경험치를 먹죠!! 'ㅁ')/"
만랩이라.. 더이상 경험치바가 오르지 못한다는 것은
내겐 ???무런 이유가 되지 못했다.
"아... 삼춘이 깜빡 잊고 있었어."
"피이.. 이래서 남자는 항상 여자가 돌봐줘야 한다니깐."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영원이.
이렇게 내 눈앞에 있는 영원이가
언제 숨이 멎을지 모르는 그런 상태란 것을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
"삼춘.... 나 쉴래효...."
"응.... "
조심스럽게 침대 등판각도를 움직여본다.
앉은자세로 세워져있던 베드의 머리부분이
조심스럽게 수평이 되어 내려져간다.
"불편하지 않아....? 베개 다시 베여줄까?"
"괜찮아효....ㅎㅎ"
어느새 영원이의 부모님과 언니가 병실에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인사를 하고 병실 밖으로 나섰다.
"삼춘!!! 내일도 올꺼죠??"
휴가라는 것을 확인한 영원이는
그 기간만이라도 매일 보고싶은 모양이다.
"그럼.. 당연하지. 이쁘게 하고 있어야돼!! "
"헤..... ㅎㅎ"
언제나 영원이는 내 눈에 예뻤다.
머리가 길때나 짧을때나
화장을 했을때나 하지 않았을때나
언제나 눈이부시도록 아름다웠다.
=======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채
바로 와우를 실행시켰다.
사람은 누구나 연기자라 했던가.
나는 오늘 태어나서 가장 힘든연기를 했다.
아무렇지도 않은듯
아무눈치도 채지 못한듯 그렇게 멀쩡히 대꾸했지만
심장이 조여드는 아픔에 미칠것만 같았었다.
로그인 화면에 영원이의 아이디를 넣는다.
그리고 몰래 훔쳐봤던 패스워드도 입력한다.
잠시 후 스톰윈드를 배경으로 한 영원의나라 캐릭이 보인다.
목구멍까지 울음이 찬다.
"크흑......."
로그인을 하자 아이언포지 여관에 서있는 영원이의 모습이 보인다.
이미 눈물이 가득차 모니터가 온통 뿌옇게 보인다.
애써 울음을 참고
키보드를 움직여 이곳저곳을 다녀본다.
경비병에게 말도 붙여보고
길가는 엔피시에게 빵도 하나 사본다.
마치 내가 영원이인것처럼
점프도 폴짝폴짝해가며 이곳저곳을 배회해본다.
하지만...
영원이는 지금 낯선 병원침대에 누워
이곳에 올 수가 없다.
저만치에 경매장다리와 은행이 보인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 본다.
방학때라 그런지 저녁도 아닌데 사람들이 많다.
엔피시에 말을 걸어 영원이의 사물함을 열어본다.
"............"
절반이상이 비어져있는 영원이의 사물함.
그리고 그 한쪽구석에
차곡차곡 놓여져있는 작은 가방들.
마우스를 움직여 가방에 갖다대본다.
<6칸가방 - 제작자: 은빛나래>
맨처음 내가 선물했던 가방이었다.
이미... 더 큰가방이 있어
아무런 필요가 없는 물건이었음에도
영원이는 소중하게 간직해두고 있었다.
"크흑.... 흑......."
아마도 내가 만들어 준것이라 차마 버릴 수 없었으리라.
참았던 눈물이 한도 끝도 없이 쏟아져 내린다.
쏟아내도 쏟아내도 폭포수처럼 설움이 북받친다.
더이상 참아낼 수가 없어서 컴퓨터 플러그를 잡아빼버렸다.
영원아.. 미안해...
네가 이렇게 아팠는지...
삼촌은 정말 하나도 모르고 있었구나.
"아아악!! "
침대 베개맡에 얼굴을 묻고 소리를 질러본다.
이대로 울다보면 이 슬픔이 조금은 가실까.
"엉엉엉.... 영원아... 죽지마..... 제발....."
울어도 울어도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내가...
병실에서 훔쳐본 영원이의 패스워드였다.
'tkfrhtlvek'
살아있다는 것은
때론 기억 한다는 것.
추억은 언제나
그리움에 비례한다.
하늘이
무너져 내릴것만 같은
아픔이 있다해도
그래도 지구는 돈다...
==========================
맨처음 유난히 하얀 피부라 느끼기만했다.
병으로 인한 창백함임을 몰랐던 나의 착각이
너무나 미안하기만 하다.
조금만 뛰어도 숨이 가쁜아이를
그저 여자아이라 그런가보다 했었다.
영원의나라... 그 닉을 보고도 아무 생각을 못했다.
롯데월드도 못가봤다 하면서도
꼭 멀리있는 에버랜드에 가고싶다고 하는 이유를
그땐 몰랐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다.
이따금 타오르는 갈증만 있을 뿐
허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어쩜, 먹는다 해도 그대로 다 쏟아버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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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골수 기증자는 있는 상황인가요..."
어쩌면 물으나 마나한 질문.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 했던가.
나역시 행여 하는 마음이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고개를 가로젓는 응답 뿐이었다.
"........."
"........."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무슨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연희가 처음 백혈병이란 걸 알았던 건... 고등학교 2학년때였어요."
뜨겁던 커피가 식어갈 무렵, 그녀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언제부턴가 많이 힘들어하고... 코피가 나도 쉽게 멎지가 않아 병원엘 갔었죠.
그때 알았어요. 우리 연희에게 그런 무서운 병이 있었는지...."
만성골수성은 급성과는 달리 병의 진행속도가 느리다.
처음에는 하이드레아를 복용했을테고... 나중엔 글리벡을 투여했겠지.
"학교도 그만두고 그렇게.... 5년동안을 매일 투병을 했어요."
그리고... 행여 나타날지도 모르는 골수기증자만을
매일같이 기다렸을테고...
"매일같이 병원을 다니면서 치료를 받았지만.. 병의 진행을 늦추는 정도였었죠."
"....항암치료는 하지 않았나요?"
"네.... 입원조차 싫어해서 집에서 통원치료만 했었거든요...."
속이 매스꺼워져서 모든 것을 다 토해버리고
너무도 독해 부작용으로 머리카락까지 다 빠져버리는... 최후의 방법.
"그렇게 매일같이 창문밖만 바라보고 살던아이가... 그렇게 집에서 책만보던 아이가....."
"..........."
그녀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돈다.
"어느날 갑자기 생기가 돌더라구요."
바보....
"그렇게 먹기 싫어하던 음식들은 먼저 찾는가 하면... 심지어....."
"......."
"...쑥뜸뜰때도 울지 않고 꼬옥 참더라구요...."
엷게 웃는 미소사이로 눈물이 맺히는 것이 보인다.
"항상 뜸을 뜰때면 아파서 몸부림치던 아이가... 오빠를 알게되면서부터 많이 달라졌어요."
"........"
아.....
"내 방에 들어와 나를 쫓아내고는 컴퓨터를 하면서.... 자긴 꼭 나을꺼라구.
그래서 연애도 하고 시집도 갈꺼라구....."
"........."
"언제나 오빠이야기를 할 땐.... 자기도 모르게 얼굴에 홍조가 돌았었죠..."
코끝이 시큰해져 온다. 젠장..
이를 악물고 울음을 참아본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한동안 진행이 멈췄던 연희의 병이... 심해지기 시작했어요."
....급성기라더군요.... 더이상 약으로는 진행을 늦출수가 없었어요.....
연희는... 항암치료를 받기로 하고... 마지막 소원으로 외출을 하고 싶댔어요..."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오빨... 참 많이 좋아했어요. 바보같이 얼굴도 모르는 사람인데도....."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진다.
하늘이 너무도 가혹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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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넌 뭐가 싫은데??'
'쑥이요. ㅠㅅㅠ'
'엥....?'
'난 쑥이 정말 싫어요. 세상에서 젤루 싫어..ㅠㅠ'
바보같이...
난 영원이가 그말을 왜 했었는지... 여태 몰랐다.
내품는 담배연기 사이로
눈물도 함께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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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일어나서 옷매무새를 다듬어 본다.
면도를 하고 샤워를 하면서
거울에 이곳저곳을 비춰본다.
밝고 말쑥한 모습으로 비춰지고 싶다.
조금이라도 초췌한 모습은 들키고 싶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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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문을 들어서기 전에 심호흡을 한다.
"후우...."
이 문을 들어서면 영원이가 있다.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사람이 있다.
꽃다발을 든 내 모습이 많이 어색하지만, 용기를 내본다.
"똑똑...."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서자
침대에 누워있는 영원이가 보이고
그 주변에 영원이의 가족들이 보인다.
"처음 뵙겠습니다. 유현민이라고 합니다..."
"반가와요. 내가 연희 애비되는 사람이에요."
인자해보이는 모습의 가족들.
캐나다에 있다는 큰언니를 제외하고는
모두 연희곁을 지키고 있었다.
따뜻해보이는 사람들..
이런 가족들이라 다행이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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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춘..... "
고개를 돌려서 침대에 누워있는 영원이를 본다.
순간 눈물이 울컥 쏟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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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가.... 오래 못버틸 것 같아요..."
창밖을 내다보며 영원이의 이야기를 하던 작은언니가
갑자기 힘들게 입을 연다.
"....폐렴이 왔어요. 흑...."
".....!!!!"
백혈병에 걸렸을때 가장 무서운 것이 열이다.
일시적으로 나는 열이 아닌경우에는
몸속 어딘가에 염증이 생겼다는 이야기므로
그것이 곧 합병증으로 이어진다.
"하.... 항생제는요? 항생제로도 나을 순 없는 건가요?"
"흐흑...."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인간의 의술로는 해결하지 못할 선을 넘어간 상태...
"내일... 병원에 와주실 수 있으세요...? 연희가 많이 보고싶어해요...."
영원이는 벌써 하늘나라에 한발을 들여놓은 상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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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 이런 모습 보이고 싶진 않았는데...."
아이보리색 모자를 눌러쓴 영원이.
아마 저 모자밑엔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을것이다.
여전히 하얀 피부에 수줍은 미소.
낯선 환자복이 조금은 민망한듯 담요를 가슴까지 끌어올린다.
"괜찮아.....? 아직 많이 아퍼...?"
"응... 많이 좋아졌어요."
영원이의 곁으로 다가서서
조심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금새라도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엄마... 잠깐 할말이 있어요."
어제 보았던 연희의 작은언니라는 그녀.
조금 불편할지도 모르는 나를 배려하듯이
부모님을 모시고 밖으로 나간다.
"삼춘......"
"응..."
"많이 보고싶었어요...ㅎㅎ"
.....나도.
목구멍까지 울음이 솟아 입밖으로 말이 나오질 않는다.
"삼춘이랑 또 에버랜드 가야되는데.... 헤....."
"으응... 또 가면 되지......"
그럴수 없을거란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밖에 위로하지 못하는 내가 싫다.
"에.... 삼춘 울어효?"
"아냐... 울긴 누가...."
바보같이.. 눈물이 멈추지가 않는다.
"우리삼춘은... 참 바보에요. 정말....."
영원이의 손길이 내 얼굴을 어루만진다.
예전에 그랬던 것 처럼.... 내 눈물을 가만히 닦아준다.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조심스레 영원이에게 입을 맞춰줬다.
이마.
콧잔등.
그리고 입술.
너무도 그리워했던 영원이의 모습.
"헤... 우리 삼춘, 이제 보니 선수네. ㅎㅎ"
애써 농담으로 슬픔을 감추려 하지만
나보다 영원이의 가슴이 더 아플 것이란 것이
피부로 느껴져 그것이 더욱 슬프다.
===========
"삼춘!!! 아니아니 그렇게 말구요!!"
"음.... 이렇게 하면 되는거야?"
잠시 그렇게 영원이와 있다가
영원이의 부탁으로 캐비넷 뒷쪽에있는 노트북을 꺼내왔다.
병원에 컴퓨터가 없었기에
지난번에 내내 언니를 졸라서
노트북을 가져오게 한 모양.
그리고 아픈몸을 무릅쓰고 병원에서 힘들게
와우에 접속을 했었을 것이다.
내 생일 축하해 주기 위해...
"와... 이러면 정말로 와우에 접속이 되는거야?"
"그러엄요!! 'ㅁ')/"
무선랜 카드 같은것일까.
조심스럽게 와우를 실행시켜 본다.
"아이디 불러봐."
"for*******"
한자한자 영원이의 아이디를 입력해본다.
"패스워드는?"
"안대욧!! -_-)+"
힘들어서 대신해준다는 말은 들은체만체
자신이 직접 입력해야한다고
노트북을 자신의 다리앞에 놓는다.
그리곤 한자한자 힘겹게 패스워드를 입력을 한다.
로그인을 하자 보이는 회색빛 풍경
가시덤블 북쪽 무덤가에 영혼의 치유사 앞에
영원이의 모습이 보인다.
"헤..... 무덤부활 해야지."
영혼의치유사에게 무덤부활을 시켜놓고
아이언포지로 귀환을 탄다.
그리고 곧바로 로그아웃을 한다.
"삼춘, 아이디 불러봐요."
"응...? 내꺼?"
"네에!! 'ㅁ')/"
"싫은데... -_-"
짐짓 안가르쳐주려고 하자
영원이의 커다란 눈동자에 장난기가 돈다.
"흐음... 진짜 안가르쳐 줄꺼에요?"
"내가 그걸 왜 말해주냐. -_-"
갑자기 심호흡을 하듯이 숨을 크게 들여마시고는
무언가 큰소리로 이야길 하려고 한다.
"언니~~!! 삼춘이 나한테 막 이상한 짓 하려고~~~ 웁웁!!"
"....뭐든지 다할께.... ㅠㅠ"
약간 오버하듯이 영원이의 입을 막고는
설득을 시켜본다.
영원이가 원한다면 와우를 접어도 상관이 없다.
아니, 두번다시 인터넷이며 게임따위 안해도 좋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장난을 치고 싶었다.
"된다.ㅎㅎ"
아까 영원이의 영혼이 서있던 바로 그자리에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나의 흑마도 온통 회색빛으로 서있다.
무덤부활을 하고 귀환을 탄다.
"이렇게 여관에 세워놔야 경험치를 먹죠!! 'ㅁ')/"
만랩이라.. 더이상 경험치바가 오르지 못한다는 것은
내겐 ???무런 이유가 되지 못했다.
"아... 삼춘이 깜빡 잊고 있었어."
"피이.. 이래서 남자는 항상 여자가 돌봐줘야 한다니깐."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영원이.
이렇게 내 눈앞에 있는 영원이가
언제 숨이 멎을지 모르는 그런 상태란 것을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
"삼춘.... 나 쉴래효...."
"응.... "
조심스럽게 침대 등판각도를 움직여본다.
앉은자세로 세워져있던 베드의 머리부분이
조심스럽게 수평이 되어 내려져간다.
"불편하지 않아....? 베개 다시 베여줄까?"
"괜찮아효....ㅎㅎ"
어느새 영원이의 부모님과 언니가 병실에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인사를 하고 병실 밖으로 나섰다.
"삼춘!!! 내일도 올꺼죠??"
휴가라는 것을 확인한 영원이는
그 기간만이라도 매일 보고싶은 모양이다.
"그럼.. 당연하지. 이쁘게 하고 있어야돼!! "
"헤..... ㅎㅎ"
언제나 영원이는 내 눈에 예뻤다.
머리가 길때나 짧을때나
화장을 했을때나 하지 않았을때나
언제나 눈이부시도록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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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들어오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채
바로 와우를 실행시켰다.
사람은 누구나 연기자라 했던가.
나는 오늘 태어나서 가장 힘든연기를 했다.
아무렇지도 않은듯
아무눈치도 채지 못한듯 그렇게 멀쩡히 대꾸했지만
심장이 조여드는 아픔에 미칠것만 같았었다.
로그인 화면에 영원이의 아이디를 넣는다.
그리고 몰래 훔쳐봤던 패스워드도 입력한다.
잠시 후 스톰윈드를 배경으로 한 영원의나라 캐릭이 보인다.
목구멍까지 울음이 찬다.
"크흑......."
로그인을 하자 아이언포지 여관에 서있는 영원이의 모습이 보인다.
이미 눈물이 가득차 모니터가 온통 뿌옇게 보인다.
애써 울음을 참고
키보드를 움직여 이곳저곳을 다녀본다.
경비병에게 말도 붙여보고
길가는 엔피시에게 빵도 하나 사본다.
마치 내가 영원이인것처럼
점프도 폴짝폴짝해가며 이곳저곳을 배회해본다.
하지만...
영원이는 지금 낯선 병원침대에 누워
이곳에 올 수가 없다.
저만치에 경매장다리와 은행이 보인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 본다.
방학때라 그런지 저녁도 아닌데 사람들이 많다.
엔피시에 말을 걸어 영원이의 사물함을 열어본다.
"............"
절반이상이 비어져있는 영원이의 사물함.
그리고 그 한쪽구석에
차곡차곡 놓여져있는 작은 가방들.
마우스를 움직여 가방에 갖다대본다.
<6칸가방 - 제작자: 은빛나래>
맨처음 내가 선물했던 가방이었다.
이미... 더 큰가방이 있어
아무런 필요가 없는 물건이었음에도
영원이는 소중하게 간직해두고 있었다.
"크흑.... 흑......."
아마도 내가 만들어 준것이라 차마 버릴 수 없었으리라.
참았던 눈물이 한도 끝도 없이 쏟아져 내린다.
쏟아내도 쏟아내도 폭포수처럼 설움이 북받친다.
더이상 참아낼 수가 없어서 컴퓨터 플러그를 잡아빼버렸다.
영원아.. 미안해...
네가 이렇게 아팠는지...
삼촌은 정말 하나도 모르고 있었구나.
"아아악!! "
침대 베개맡에 얼굴을 묻고 소리를 질러본다.
이대로 울다보면 이 슬픔이 조금은 가실까.
"엉엉엉.... 영원아... 죽지마..... 제발....."
울어도 울어도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내가...
병실에서 훔쳐본 영원이의 패스워드였다.
'tkfrhtlv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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