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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나는 흑마다...(24) (by 영원의나라)

24. 편지

슬픔이란 언제나
살아남은 사람들의 것

때론 기억이
아픈 비수가 되어 돌아온다 해도

한줄기 추억으로
그리움 사이에 고이 접어

넣어두기를...


=================



영원이를 만나기 전에

언젠가 그런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삼춘... 근데 삼춘은 왜 장가를 안가효?'

'...장가고 뭐고, 삼촌을 자꾸 삼춘이라고 하는 이유가 뭔데..?'


영원이를 에버랜드에서 처음 보기 전에

난 그저 연희를 어린아이로만 대했었다.


'웅... 예전에 친구들 보니까 예전에 다들 삼춘이라고 부르던데... ;ㅂ;)a'

'삼촌이 표준어야. 그러니까 그렇게 불러. -_-'


'........;ㅂ;)a'


표준어 따윌 운운하며 말하는 내게

영원이는 한참을 쭈뼛거리더니 말을 꺼냈다.


'....삼춘이.... 더 정감있는데.... ;ㅂ;)a'

'........-_-;;'


정감은 무슨...

아.... 설마;;


'영원이... 혹시 삼촌이 없니..?'

'네... ;ㅂ;)/'


고모들만 몇명 있을뿐

아들손이 대대로 귀한 집안이라고 했다.


'음....;;;'


미안하기도 하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꺼낸 죄책감에

잠시 할 말을 생각하고 있는데 영원이의 말이 이어진다.


'그리구... 삼촌이라고 부르면 친조카 같잖아효... ;ㅂ;)a....'

'......-_-;'

'삼춘이라고 부르면... 왠지 나만 부르는 이름 같기도 하구... ;ㅂ;)/...'

'..................-_-;;;'


더 고집부리면 왠지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은 느낌.


'알았어. 그럼... 그렇게 불러;;'

'와!!! 진짜효??!!! ;ㅂ;)/'


그렇게 좋을까. 그냥 부르는 것 뿐인데.;;


'삼춘삼춘삼춘삼춘삼춘삼춘삼춘삼춘삼춘삼춘삼춘 우리삼춘!!!!!! ! >ㅁ<'

'......아쭈. -_-'

'우리 삼춘, 최고!! 히히힛!! >ㅂ<'


그렇게 좋았었니.. 삼춘이라는 말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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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랜드가 내려다보이는 산자락에

영원이를 남겨두고

빈차로 혼자 돌아오는 길은 너무도 길었다.


"후......"


창문을 조금 열고

담배를 하나 물어 본다.


친구차를 빌려오긴 했지만

약간의 담배냄새가 배어도 이해해 줄 것이다.


'미안하다....'


지난번 영원이와 에버랜드를 왔을 때

차를 빌려오지 않은 것이 이리도 후회될 줄은 몰랐다.


친구에게 빌렸어도 되었고

하다못해 렌트카를 가져오는 것 역시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짧은 생각으로 나는 그러질 못했다.


'삼춘.. 우리 다음엔 꼭 같이 집에가효. ㅠㅠ'


나는 영원이의 작은 부탁하나도 들어주질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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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가 남긴 편지에요...."


영원이의 유언대로

에버랜드가 내려다보이는 그곳에

영원이의 유해를 뿌리고 난 후


그녀는 작은 핸드백안에서

연희가 나에게 남겼다는 편지를 꺼내어 건내주었다.


"그동안... 고마왔어요...."

"........"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여전히 오열하고 있는 연희의 엄마와 큰언니.


영원이의 가족들을 뒤로 한채

나는 그렇게 도망치듯 차에 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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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담배연기가 눈에 들어갔나보다.

눈이 아파서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



집앞에 차를 세우고

텅빈 집안으로 들어와 쓰러지듯 허물어진다.


너무도 꿈결같고

너무도 믿어지지 않는다.

영원이가 이 세상에 더이상 존재 하지 않는다는 것이

전혀 실감나지 않는다.



어쩜 나는 긴 꿈을 꾼것이 아닐까...


금새라도 영원이가 '삼춘'이라며

저 만치에서 달려올 것만 같다.


"하아...."


아직도 마르지 않은 눈물을 닦고

조용히 컴을 켜본다.

그리고 영원이의 아이디로 접속을 시도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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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워드가 바뀐것도 아니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영원이의 캐릭이 보이지가 않는다.


갑자기 눈앞이 멍해진다.


어떻게 된것인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불과 지난주에만 해도

영원이의 캐릭은 분명히 존재했었다.


강제종료를 시도해본다.

어쩌면 섭따등의 버그로 인해

일시적인 오류일 수도 있을 것이다.


".........."


몇 번을 다시 시도봤지만

영원이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마치

처음부터 영원의나라 캐릭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텅빈 여백만이 캐릭터 창을 가득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불현듯 어떤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설마.....'


나의 흑마를 잊혀진땅

어느구석엔가 영원히 묻어두고

새롭게 사제를 만든 이후로

그동안 나는 접속을 하지 않았었다.


급하게 나의 계정으로 접속해본다.


로그인 화면이 바뀌고 캐릭터선택 화면이 뜬다.


"..........."


그리고 그 곳에서

나는 영원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영원이의 모습이

랩1짜리 작은 노움의 모습으로 변하여

나의 계정안에 살아 숨쉬고 있었다.


"여... 영원아....."


말라버린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 흐른다.

마치 수도꼭지처럼

울움도 나지 않는데 눈물만 흐른다.


"이... 이거였니."


내가 영원이를 찾아 처음으로 병문안을 갔었던 그날.

굳이 내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알려달라고 때쓰던 이유를

나는 오늘에서야 알 수가 있었다.


내 계정안으로 들어와 있는... 영원의나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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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이 뿌옇다.

눈이 보이질 않는다.

떨리는 손으로 양복주머니 안쪽을 더듬어 본다.


차마 용기가 나질않아

아직까지 뜯어보지 못한

영원이가 나에게 남긴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


조심스럽게 손으로 봉투를 뜯어

내용물을 꺼내어 본다.



=============



-삼춘!!! 헤헤!! 연희에요.

-이렇게 편지로 쓰자니 되게 어색하고 쑥쓰럽네요. ㅎㅎ

-그래도 삼춘한테 꼭 남겨야 할 말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써봐요.


영원아...


-이 편지를 삼춘이 보고 있다면.. 이미 내가 세상에 없다는 뜻이 되겠죠?

-헤... 왠지 쪼끔 서글프다. ㅠ0ㅠ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이제 더 이상 아플 일은 없을테니까요.


이렇게 될 거 알고 있으면서도

너는 그리도 밝고 명랑했었구나.


-삼춘... 얼마 안있으면 삼춘 생일이네요.

-그동안 찾아가질 못해서 많이 미안했어요.

-삼춘이랑 에버랜드 갔다온 담에 며칠있다가 갑자기 되게 많이 아팠어요.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는데.. 엄마랑 언니가 펑펑울면서 옆에 있었어요.

-내가 정신을 잃은지 하도 오래되서 죽는줄 알았었대요.


어느날 갑자기 소식도 없이 사라졌었던 영원이.

그리고 끝없이 이어졌던 나의 기다림.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는데... 며칠전까지만 해도 중환자실에 있었어요.

-어제 병실로 옮기면서... 언니랑 엄마랑 막 우는 걸 보았어요.

-내가 몸이 많이 좋아져서 옮기는데도 슬픈가봐요.

-참 다행이에요. 삼춘한테 인사도 못하고 먼 곳으로 가는줄 알았었는데...


촛불은 꺼지기 전에 가장 밝다.

아마도 영원이도 그런 상태였으리라...


-며칠있으면 삼춘 생일인데.. 선물도 준비할 수가 없네요.

-그래서 언니 졸라서 병실에서 컴퓨터 할 수 있게 조르고 있어요.

-아파서 안된다고는 하는데.. 조금만 더 조르면 될 것 같아요.

-작은 언니는 내 말이면 무조건 들어주거든요. 헤헤..


그랬구나.. 그렇게 힘들게 내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구나.


-예전에 혼자 집안에만 있을 땐.. 세상이 참 어두웠어요.

-삼춘 몰랐죠? 예전에 내가 얼마나 외로왔는지....

-일년, 이년 아파가면서... 친구들과도 점점 멀어져가고

-대학엘 가서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는 사람들만... 마냥 부러워하곤 했어요.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책을 읽는 것 뿐...

-다른 사람들처럼.. 연애도 하고, 차도마시고, 수다도 떨면서 그렇게 평범하게 사는것이

-내게는 왜 이리도 힘든 것일까요....


한번 쏟아져내리는 눈물은 멈추지를 않는다.


-어떨때는 빨리 죽고 싶은 적도 있었어요.

-이렇게 힘들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보다 그게 더 나을꺼란.. 그런 나쁜생각 한적도 있었어요.

-첫눈에 반한다는... 그런 것 따위는 절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다가.. 우연히 인터넷에서 게임이란 걸 할 수 있다는 거 알게 됐구..

-그러다가 삼춘을 만나게 됐었죠.


그래... 나도 기억해.


-맨 처음 삼춘을 봤던 순간이 지금도 생각이 나요.

-괴물들한테 둘러쌓여서 어떻게 할수도 없는데..

-막 도망다니려고 해도 점점 더 늘어나서 이젠 끝인가보다 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삼춘이 내려왔어요.


삼춘도 잊지 않고 있단다...

코볼트들에게 둘러 쌓여 난감해하던, 영원이 네 모습을.


-불타는 말을 타고 내앞에 나타나 하늘에서 불덩어리를 내리는 삼춘의 모습은

-나한테는 정말 꿈같은 모습이었어요.

-투구에가려서 얼굴도 볼 수가 없고.. 빨간눈이 무섭긴 했지만...

-분명히 좋은 사람일 거라 생각했어요.


언제나 공포머리를 푹 눌러쓰고 다니던

그때의 내모습이 기억이 난다.


-헤... 첨엔 언니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삼춘이란 거 알고 내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르죠?

-에버랜드에서도 첨 봤을때.. 너무 좋았구요...

-삼춘이랑 원숭이랑 곰들이랑 같이 놀때두 정말 잊지 못할꺼에요.

-태어나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어요.


그랬구나... 나도 그랬었어.


-나 사실은 예전에 삼춘이 말했던 게 자꾸 기억이나요.

-오래 전 글을 쓰다가 다 접었다는... 그 이야기.

-그 언니가 삼춘한테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몰라도...난 삼춘이 다시 글을 썼으면 좋겠어요.

-사실은... 꿈을 버릴정도로 좋아했던 그 언니한테 왠지 질투도 생기구요. -_-)+

-나 때문에 다시 글을 쓸 수 있다면... 내가 언니를 이기는게 되는 거니까. 헤헤..

-꼭 들어줄꺼죠? 내 마지막 소원이니까.. 안들어주면 안되요.ㅎㅎ


바보야. 이미 나한테는 너 밖에 없는 걸...

내 마음은 영원이 너밖에 없어서.. 다른건 아무것도 생각이 나질 않는 걸...


-아 참!! 그리고 소원 하나 더!!

-나 없다고 해도 절대로 울거나 하지 말고... 밥도 잘먹고 회사도 빠지면 안되요.

-그냥.. 삼춘을 많이 좋아했었던 사람,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만 기억해주면 되요.

-만약 내가 없다고 해서 매일 울고, 모든걸 다 포기해 버리는 그런 삼춘이 된다면

-나는 하늘나라에서도 되게 많이 슬플꺼에요.


내가 어떻게 널 잊겠니.

세상이 지금 끝난다고해도.. 어떻게 그 기억을 지우겠니.


-사실 지금도 걱정이 되요.

-툭하면 우는 울보라... 옆에서 누가 항상 돌봐줘야하는데...

-우리 삼춘... 불쌍해서 어떡해요. 그렇게 울 때마다 내가 눈물 닦아줘야 하는데.

-이젠 그렇게 못해줘서.. 너무 미안해요.

-나... 더 울게 만들지 않을꺼죠? 씩씩하고 멋지게 살아 갈 수 있죠??


내가 울 때마다.. 항상 내 얼굴을 어루만져주던 작은 아이.


- 울지 말아요. 삼춘은 흑마잖아요.ㅎ

- 해봐요. 나는 울지 않아.

- 해봐요. 나는 흑마니까, 절대 울지 않아.

-절대 울면 안되요.. 이젠.. 삼춘 울어두 눈물 닦아줄 사람 없으니까..

-삼춘이 울면 하늘나라에서도 나 너무 슬퍼서 편하지 못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앞으론 절대로 울지 않기!! 약속!!!


미안해... 울면 안되는데... 자꾸 이상한게 눈에서 나와.


-언제나 혼자다니는 삼춘이 많이 안쓰럽고 안타까웠어요.

-쉽게 상처받고.. 쉽게 아물지 않아서.. 언제나 혼자 외롭게 다니던 우리 삼춘...

-내가 항상 곁에서 지켜주려구 했는데... 먼저 떠나서 미안해요.


예전 여자친구와 헤어진 이후로

알속에 틀어박힌 것 처럼.. 언제나 혼자였던 나.


-앞으론 그렇게 혼자만 있지 말구... 친구들도 만나고 그래요.

-게임도 혼자 하지 말구 길드도 들고, 벙개라는 것도 나가고...

-사람들하고 재밌게 아웅다웅 하면서 지내길 바래요.

-그리고... 주말엔 예쁜 언니 만나서 데이트도 좀 하구요.

-그렇게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랄께요.


게임안에서조차 언제나 소환수와 둘이서

외롭게 사냥을 다니던 나..


-그래야 나도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아요.

-만약, 나 때문에 아무도 안만나고

-매일매일 슬픔에 빠져서 지내기만 한다면

-나는 죽어서도 내내 가슴아플꺼에요.


그럴께. 길드도 들고 친구들도 만들께.


-하늘나라에서도 언제까지나 삼춘 지켜보면서.. 행복하기를 기도할께요.

-맨날 삼춘말 어기고 딴짓하는 못된 아이였으니까...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어길께요.ㅎㅎ

-오빠. 연희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우리 현이 오빠.

-처음봤을때부터 지금까지 사랑했어요. 그리고도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할께요.


참았던 슬픔이 한꺼번에 터져나온다.


-오빠, 그리고 삼춘.

-안녕...



============



한참을 울었다.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흘렸던 모든 눈물보다

오늘 하루동안 쏟은 눈물이 훨씬 더 많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를 걱정하던 아이.

언제나 자신보다도 나를 더 돌보며

위로하려 애쓰던 아이.


'바보얏!!! 거기서 나한테 힐을 주러오면 어떡해!! 몹이 다 널 쳐다보잖아!!'

'아..... 그게.... 삼춘이... 죽는줄 알고.... ㅠㅠ


게임안에서조차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고

내게 무한힐을 넣어주던 아이.


'삼춘 이거 먹어요!!'

'이 물약을 사용하면 체력이 140~180만큼 회복됩니다.'


만랩인 내게

하급치유물약을 조심스럽게 건내주던 아이.


ㅡ영원의나라가 당신에게 키스를 보냅니다.


어느날부턴가 나에게 감정표현이란 것을 보내던 아이.

그리고 유일하게 내게만 키스를 보내고 부끄러워하던 아이.


'헤헤!! 삼춘!! >ㅂ< '


휴먼캐릭터였지만

마치 노움처럼 방방뛰면서 행동하던 아이..


그리고 이제 노움이 되어

나와 함께 영원히 같이 숨쉬는 아이...


"후........"


이젠 작은 노움으로 변해

내 곁에만 남아있는 아이.



담배를 하나 꺼내문다.

그리고 새캐릭터 생성버튼을 눌러

예전의 영원이의 모습을 꼭 닮은

흑마를 하나 만들어 본다.


'파멸의나라'


아직 내겐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있다는 것이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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