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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적인 임대 vs. 능동적인 임대

분당에서 상가를 임대한지 3년쯤 된 윤임대(가명, 72세) 씨가 며칠 전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도 있듯이, 임대 경험 3년 차라면 어지간한 일로 급하게 전화할 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필자는 가볍게 긴장하면서 전화 저편의 상황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내용을 다 듣고 난 후, 필자는 또 한차례의 가벼운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먼저 상황을 살펴보자.

윤임대 씨는 2005년 2월 1일부터 2년간 계약으로 박임차(가명, 40세) 씨에게 1층 90평을 음식점으로 임대하였다. 음식점의 임대조건은 보증금 1억 원, 월 임대료 3백5십만 원, 월 관리비 4십5만 원이었다. 그런데 최근 박임차 씨의 남편이 하고 있는 사업에 문제가 생겨, 채권자가 결국 박임차 씨의 임차보증금 1억 원에 대해 가압류(임대보증금에 대한 제 3자 채권 가압류) 통지를 보내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미 임대료가 7백만 원 연체되었고, 인테리어로 인한 원상복구비용이 약 3천만 원 정도 예상된다고 했다. 윤임대 씨는 가압류 통지를 받은 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워 했던 것이다. 필자가 충격을 받은 이유는 어떻게 보면 임대의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을 상가 임대차 3년 차인 윤임대 씨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을 짚어 준 중개업소나 법무사들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당연히 이런 경우에는 임대보증금에서 임대료 연체분과 연체이자, 원상복구비용 등 일체의 비용을 임대인이 먼저 공제하게 된다. 가압류권자(채권자)는 그 나머지 잔액에 대해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만약 권리상의 다툼이 생긴다면 임대인은 임대보증금잔액을 법원에 공탁하면 된다. 민법을 조금만 공부한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는 해결책이다. 너무 쉽다고? 하지만 이것은 문제의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이후의 대응 방식에 따라 수동적인 임대와 능동적인 임대로 구분이 가능하다. 먼저 일반적인 수준에서의 대응, 그러니까 수동적인 대응을 먼저 확인해보자. 수동적인 임대인의 경우에는 자신이 받아야 할 금액을 먼저 보장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안심하게 된다.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임대보증금잔액 공탁까지 걸어두었다면 더욱 안심이다. 자, 이제 임대차가 종료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임차인이 명도를 순순히 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천만의 말씀! 그럴 확률은 거의 제로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설상가상으로 가압류 통지 후부터 임대료도 지속적으로 연체되기 시작할 것이다. 왜 그런 걸까?

원래 임대차가 정상적으로 종료되면 임차인은 임대물건을 원상 복구하여 임대인에게 명도하고, 동시에 임대인은 임대보증금을 임차인에게 반환한다. 하지만 위와 같은 상황처럼 임대보증금이 임차인의 손에 한 푼도 돌아가지 못한다고 가정한다면, 임차인은 단박에 깨닫게 된다. 명도를 거부하는 경우 임차인에게는 더 이익인 것이다! 명도를 해주면 장사를 할 장소도 잃고 이사비용에 창고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는 반면, 임대보증금은 채권자에게 돌아가거나 법원에 공탁된다. 부양해야 하는 가족과 직원들의 얼굴을 바라보면, 옳고 그름을 떠나 임차인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반대로 명도를 거부하고 임대료를 내지 않는다면? 명도소송은 시작되겠지만 소송기간 동안 장사도 계속할 수 있고, 연체된 임대료는 어차피 남의 돈이 될 임대보증금에서 제하게 된다. 임대료를 지급하지 않고 따로 모아두면 생존과 재기를 위한 소중한 자금이 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거역할 수 없고 안 하면 바보 취급까지 받게 되는 합리적인(임차인의 입장에서) 결정을 내리게 된다. 밀린 임대료와 제반 비용을 먼저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에만 안심하고 수수방관하는 수동적인 임대자라면, 십중팔구 이런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럼 능동적인 임대란 어떤 것일까? 실전임대경험이 풍부한 임대인이라면 임대보증금에 대해 제 3자가 권리를 주장(채권 가압류 또는 질권설정) 하는 경우, 자동적으로 향후 명도의 어려움 및 임대료 연체를 예상한다. 그리고 임차인이 이러한 현실을 깨닫고 행동하기 전에 갖고 있는 협상카드(당근과 채찍)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향후 명도의 불확실성에 대해 실무적인 대책을 수립하게 된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대책 수립이 안정된 임대수익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이미 몸으로 경험한 결과다. 안타까운 일은 최근 초보 임대인들이 늘어나면서 아무런 리스크 인식 및 대책수립 없이 임대차 종료 후 명도소송으로 이어지고, 이는 곧 임대인의 손실로 이어지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사업에서 그렇듯 리스크는 그 존재 자체를 인식하면 이미 그 절반은 해결된 것이나 다름없다. 특히 요즘처럼 적은 보증금과 월세가 보편화된 시기에는 임차인의 상황에 대한 관찰과 이해야말로 임대차 리스크 관리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기본적인 일인 것이다. 아직도 일부 부동산 중개업소에서는 임대인에게 다음과 같이 자문을 한다. “임대보증금에서 임대인이 먼저 공제하고 남은 게 있으면 그 때에야 채권자가 가져가는 겁니다. 임대인은 걱정할 일 하나도 없죠, 헛헛헛~”. 과연 그 중개사는 직접 겪어본 경험이 있기나 한 걸까?


<김유석 렘스자산관리 이사 cpayusuk@gmail.com>
부동산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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