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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층계

적산가옥(敵産家屋)구석에 짤막한 층층계.....

그 이층에서
나는 밤이 깊도록 글을 쓴다.

써도 써도 가랑잎처럼 쌓이는
공허감.

이것은 내일이면
지폐가 된다.

어느 것은 어린것의 공납금.
어느 것은 가난한 시양대(柴糧代).
어느 것은 늘 가벼운 나의 용전(用錢).

밤 한시,혹은
두 시. 용변을 하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아래층은 단칸방.

온 가족은 잠이 깊다.

서글픈 것의
저 무심한 평안함.

아아 나는 다시
층층계를 밟고
이층으로 올라간다.
(사닥다리를 밟고 원고지 위에서
곡예사들은 지쳐 내려오는데....)

나는 날마다
생활의 막다른 골목 끝에 놓인
이 짤막한 층층계를 올라와서
새까만 유리창에
수척한 얼굴을 만난다.
그것은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어설픈 아버지라는 것이다.

나의 어린것들은
왜놈들이 남기고 간 다다미방에서
날무처럼 포름쪽쪽 얼어 있구나.




- 박 목 월



아아 나는 다시
층층계를 밟고
이층으로 올라간다.
(사닥다리를 밟고 원고지 위에서
곡예사들은 지쳐 내려오는데....)

이 부분의 표현은 정말 너무 멋지지 않아?

박목월의 표현력과 문장력에 정말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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